민명기 칼럼
동부의 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녀석이 요즘은 아이들이 잘 안 쓰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세상에서 가장 긴 탯줄이라는 셀룰라 폰이 대중화되면서 부자지간에 별로 이메일 보내는 일이 없었는데 이거 무슨 말하기 힘든 부탁이라도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가끔씩이나마 가족간에 전할 소식이 있으면, 텍스트 메세지나 카톡의 가족 멤버간 그룹 채팅 공간을 사용했던터라 의아한 마음으로 열어 보았더니. 웹사이트 주소 하나를 보냈다. 들어가 보니, 한인 교포 자녀로 생각되는 웨슬리 양이라는 청년의 "종이 호랑이: 시험이 끝난 후, 아시아계 미국인 똑똑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라는 뉴욕 매거진에 발표된 지 일년이 지난 글이었다. 교육자로서의 직업 의식이 발동한 것에 더해 언뜻 보아도 몇 해전 출판되어 온갖 비판과 찬사를 함께 받았던-- 중국식의 엄격한 전통 교육 방식을 옹호한-- 에이미 추아의 책, "호랑이엄마의 승전가,"를 패러디했으리라는 발칙한 짐작이 가는 지라 제법 긴 글을 단숨에 읽었다. 제목 자체가 풍기는 인상처럼, 학교 공부에 목 매달고 하루 하루를 '공부, 공부'해가며 우수한 성적을 받는 우리 아시안아메리칸 자녀들이 시험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대학 생활을 벗어나 현실 사회속으로 들어가면 사회성이 없어 팀워크에 약하고, 자기 의견을 용기있게 발표할 줄 모르는 의기소침증 때문에 맥을 못춘다는 비판이었다.
그 결과 아시아계젊은 이들이 종국에는 그러 그러한 소시민적 직업들에만 만족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아주 터무니없지만은 않은논점을 지닌 문화 비판이었다. 이 젊은이의 주장이 대부분의 우리 부모나 자녀들에게 일반적으로 백 퍼센트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을 하는 것은 아니라해도 우리 부모님들이 들어 약이 될만한 논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또한, 왜 아들 녀석이 이 글을 읽어 보라고 보냈는지의 속뜻을 알만도 한 것이었다. 저자가 느끼는 아시아 부모님들의 사고 방식을 그 자신의 말로 요약하면 (Fxxx을 각 어구의 앞에 붙였기에 뭐라 번역을 해야할가 고민하다 나름의 의역을 했으니 양해해 주시기바란다), "빌어 먹을! 부모에 대한 무조건 복종 (유교 사상의 부자유친을 말하는 듯함), 그 놈의 공부 공부를 달고 사는, 생각없이 아이비 대학만 노래하는, 쓸데없이 권위에는 쪽을 못쓰고 복종하는, 엿같은 겸손과 과도한 열심이 넘치는, 모나지않은 관계에 대한 광신을 고집하는, 미래를 위해서는 뭐든 포기하는, 뭣 같이 속 내놓는 중산층 아양떨기에 익숙한." 등으로 번역해 보았다. 몇몇 대목에서는 '아이구 이 친구 내 이야기를 하는 것 아냐? 이거 참!'하며 괜히 땀도 안 나는 이마를쓸어 내리며 아들 녀석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같은 심정에 일견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 글을 읽으며, 이와는 반대편의 이야기이지만, 위에 언급한 '호랑이 엄마'를 쓴 중국계 예일 법대 교수가 미국에서 아시아인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7개 민족 (쿠바인, 유대인, 인도인, 나이지리아인, 모르몬 교도, 이란인, 레바논인등)이 미국 사회에서 성공적인 인종이라는 책을 출간한 것을 기억해 내고는 그것이 기록된 내 오랜 수첩을 뒤져보니 연관된 글이하나 더 있었다.
그 무렵 타임지가 이러한 특정 인종의 성공 사례 분석 방식이 혹시 새로운 형태의 인종 차별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논조의 "우월성 컴플렉스"라는 글을 게재했었다. 이 기사에서, 인도 출신인 저자는 인디언들의 우월의식에 대해 소개한다. 인도인들은 자녀들에게 인디언 임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미국 의사들의 38%가 인도 출신이고, 미항공 우주국 엔지니어들의 36%, 마이크로 소프트 직원의 34%가 인디언이다. 인도는 숫자체계와 소수를 발명했고, 산스크리트어는 컴퓨터 소프트 웨어에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라는 등 민족적 우얼성 고취에 힘쓰는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그 무렵은 인도 출신인 사티아 나델라가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신임 회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막 나온 때였으니,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아마도 인도인들의 급격한 상승세가 그러한 교육 방식의 성과를 반증하는 것이라고 느꼈음직도 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우리 경우로 돌아 오면, 1970년대에 3만 9천명에 불과했던 코리언 아메리칸의 인구는 이제 백만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수는 늘었으나, 우리의 교육 방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마의 변에서 인용했던 고리짝 그의 어머님의 말씀에 요약되어 있지나 않은지: "야 , 이놈아, 모난 놈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눈치보면서 살아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러한 사고 방식은 우리네 미국에 사는 부모님들에게도 배어 있을 수도 있다.
자녀가 하고 싶은 것을 과감히 할 수 있는 모험심이나 당장 힘은 들고 돈은 안되어도 창조적인 열정을 길러 주기 보다는 그저 돈 잘버는 의사나 사업가, 엔지니어가 되어 모나지 않게 잘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은연중에 심어 주고 있지나 않은지? 위에 소개한 웨슬리 양이 지적한 것의 일부처럼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얼마전 타계한 로빈 윌리엄스가 출연했던 아이 패드의 광고 속에 나온, "죽은 시인의 사회 (1990년 영화)"에서 인용되었던 미국 시인 월트 위트만의 싯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듯하다. "시가 그저 그럴듯하기에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인류 사회의 일원이기에 읽고 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다. 의학, 경영, 엔지니어링은 인류가 생명을 지키는데 필요한 귀한 일들이다. 하지만, 시, 아름다움, 로맨스, 사랑은 그것을 위해 우리가 사는 목적들이다. 휘트만이 노래한 것처럼,...(인생이라는) 연극은 계속되고, 당신은 거기에 한 싯귀를 보탤 수 있다. 당신의 싯귀는 무엇인가?" 우리 아이들이 주인공인 인생극 속에 '한 싯귀'를 더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우리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통해 그들의 삶을 값지게 살도록 도울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지난 겨울 한국을 출장 방문하는 비행기 속에서 본 영화 두 편이 생각난다. 비행기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리스트를 살펴 보노라니,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엘리아 카잔 감독이 1955년에 영화화한 "에덴의 동쪽"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인가부터 좋아했던, 우수에 찬 제임스 딘이 사사건건 아버지에 반항하는 아들로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관심은 있었지만 아직 보지 못한 영화여서 주저없이 선택을 했다.
큰 아들을 무한신뢰하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은 사랑받지 못하는 원망을 반항으로 표현하는 둘째 아들의 고단한 삶이 필자가 전에 교수로 일하던 캘리포니아 주의 몬트레이와 살리나스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어 흥미를 더 했다. 존 스타인벡의 원작을 그대로 충실히 따른 것은 아니고 소설 후반부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영화의 내용을 잠시 살펴 보자. 미국이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인 1917년과 18년을 배경으로 제법 성공적인 미 서부 농부 집안 가족들의 애환이 펼쳐 진다. 기독교 신앙 원리에 철저한 아버지와 그 뜻을 충실히 따르며 예쁜 약혼자까지 둔 큰 아들, 아버지의 기독교적 순수함에 대한 강요에 숨이 막혀 집을 나가 근처의 도시에서 술집을 경영하며 집안과 연을 끊고 사는 어머니. 그리고 모든 것을 큰 아들에게 선점당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지만 번번이 일이 꼬여 아버지의 미움만 사게 된다. 이 모든 갈등과 애증의 끝에 둘째 아들은 형의 약혼녀의 사랑을 얻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회복하게 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으랴만, 현실 속에서 자녀를 키우다보면 더 정이 가고 부모의 사랑이 더 깊게 가는 자녀가 있기 마련이다. 스타인벡의 소설과 이 영화가 바닥에 깔고 있는 성경 속의 사건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다.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인 카인과 아벨 중, 큰 아들인 카인은 아벨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 동생인 아벨을 살해한다.
그 이후 아브라함의 가계에 등장하는 성경속의 가족 이야기는 우리네 일상에서 만나는 다툼과 갈등의 전형을 보여준다. 야곱과 에서의 장자권 다툼, 요셉과 형들 사이에서 시기로 인해 벌어진 갈등. 부모의 편향된 사랑이 얼마나 자녀들에게 큰 악영향을 끼치는 지를 보여 주는 여러 사례들을 미리 보여 주는 듯 하지 않은가? 돌아 오는 비행기 속에서 다른 한 편의 영화를 보았다. 젊은 시절의 시드니 포이티에가 주연을 맡은 "To Sir, with Love (선생님께, 사랑을 담아)"였다. 영국 런던의 빈민가에 초임 교사로 부임한 젊은 교사가 어른들을 믿지 못하는 아이들과 벌이는 갈등과 사랑을 담은 영화였다. 1967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런던의 동쪽끝 빈민가에 위치한 노스 퀘이 고등학교 졸업반 교실에 부임한 교사가 어떻게 학생들의 마음을 얻고 그 아이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지를 보여준다.
개봉 당시,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제곡인 "To Sir, with Love"가 그 해 빌보드 차트의 넘버 원 팝송으로 뽑힐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었다. 주인공인 태커리 선생은 공대를 졸업하고 원래 엔지니어링 회사에 취직하기를 원했지만, 취직이 되지 않자, 학생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학교를 갑자기 그만둔 전임자의 후임으로 이 학교에 임시 교사로 취직한다. 첫 시간부터 거친 학생들로부터 고난을 겪지만, 차차 학생들을 다스려야할 꼬마들로서가 아닌 성인으로 대하며 생활속에서 필요한 지식을 대화체로 풀어나가 아이들의 신임을 얻기 시작한다. 그 후 우여 곡절이 있었으나 학생 하나 하나를 존중하는 그의 태도가 전체 학생들의 신뢰를 얻고, 좋은 엔지니어링 회사에 취직 통보를 받은 후, 학생들의 졸업식을 치루게 된다. 졸업식에 열린 댄스 파티에서 학생중의 하나가 이 영화의 주제곡을 부른다. 노래의 일부를 의역해 소개하면, "...어떻게 소녀에서 숙녀로 변화케 해주신 분께 감사를 드릴 수 있을까요?
쉽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할께요. 하늘을 원하시면, 저 높은 하늘에 '선생님께, 사랑을 담아'라고 편지를 쓰겠어요...(다른 것도 드릴 수 있지만) 제가 제 마음을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선생님, 사랑을 담아서." 정성이 담긴 선물과 노래에 감동한 태커리 선생은 자기의 사무실로 돌아가 회사에서 보내 온 입사 허가서를 찟으며 학교에 남기로 결심한다. 우리가 사는 곳이 런던의 동쪽 끝 빈민가이든, 에덴의 동쪽 추방지이든, 어떤 환경 속에서라도 우리 자녀들을 편애하거나 자기 고집대로 몰아 세우기 보다는 각자의 모양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인생에 "한 싯귀"를 더할 수 있도록 돕는 부모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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